어두운 자정, 결계가 쳐진 후원의 마당에 기괴한 주문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무 삼만다 사막삼부타…….” “아샤 아슈타남 사르바…….” “마자하리냐 반타하리냐…….” 저음으로 짙게 깔리며 웅웅거리는 소리와 쏟아지는 귀기가 어찌나 음산한지, 결계 밖에 있어도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그 한가운데에서 세 마라왕에게 둘러싸인 허윤도 겉으로는 상태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으으음.” 허윤이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크으으…….” 허윤은 신음을 내면서도 이기어도를 비롯한 귀물을 바닥에 차근차근 늘어놓았다. “어이구…… 나 죽네, 나 죽어! 무슨 저주가 이렇게 독하담. 귀기가 너무 세서 못 버티겠는걸?” 하나 옆에서 들으면 정말 죽을 것 같은 사람의 목소리가 절대 아니었다. 도리어 골목 어귀를 서성이던 노인이 젊은이와 시비가 붙었다가 괜히 넘어지며 사람 친다고 빽빽 소리를 지르는 듯한 광경이 연상되는 모습이었다. “아구구, 진짜 죽겠네. 이러다가 세 마두를 모두 풀어 주게 생겼는걸?” 마라왕들이 괜히 짜증이 나서 주문의 강도를 높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돌연 허윤의 눈이 뒤집히고 입에서 흰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아…… 된다, 돼…….” 허윤이 기쁨의 숨을 토해 냈다. 그간 허윤이 북두건곤칠성대법의 구단금에 오르지 못했던 것은 귀기가 부족해서였다. 북두건곤칠성대법은 귀기를 다스리는 심법이라 역설적으로 그만큼의 귀기가 있어야 수련이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모아 두었던 귀물들에 서역 최고의 염술을 가진 마라왕 셋이 뿜어내는 귀기까지 더해지자, 마침내 부족했던 부분이 채워졌다. 귀력은 무언가를 이루어 내는 힘. 강력한 저주는 무(無)에서 없던 흉(凶)을 만들어 내기에 그만큼의 귀기를 동반한다. 세 마라왕이 뿜어내는 저주가 너무 강해서 귀기도 어마어마했다. 마치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꽉 찬 물통의 마개를 누르며 억지로 버티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좋아. 귀기는 충분해. 간다!’ 허윤은 바로 심상으로 들어갔다. 일단정금부터 시작하여 한 단계씩 계속해서 밟아 올라갔다. 귀력이 충분하니 진행 속도가 이전과는 비할 바 없이 빨랐다. 처음부터 전력 질주로 달린 데다 가속까지 붙어 단계가 휙휙 지나갔다. 무아지경에서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없지만, 허윤이 체감하기에 거의 눈 깜빡할 만큼의 찰나라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로 금방 구단금의 벽이 보였다. 심상 속에서 실체화한 벽은 말 그대로 벽이었다. 과연 내가 이 벽을 넘을 수 있을까? 거의 천 길 높이에 가까운 벽이 점점 눈앞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넘을 수 있을까? 만일 이번에 넘지 못하면 영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것만 같다. 그러나 한편으로 겁이 나서 그냥 포기하면 다시는 여기까지 오지 못할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래서 허윤은 멈수 없었다. 아니, 멈춰서는 안 된다. 곧 현 강호에서 유일하게 삼재조화경에 올랐다는 무림맹주를 상대해야 한다. 마라왕에게 들은 얘기로는, 무림맹주가 신주에 대해 알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어쩌면 그는 신주를 지키는 수호신 같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반드시 저 벽을 넘어야……! 하지만……. 허윤은 마른침을 삼켰다. 너무 높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높이를 뛰어넘는 건 불가능해……! 아니, 잠깐. 굳이 넘을 필요 있어? 어차피 어떻게든 넘어가기만 하면 되잖아. 허윤은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이를 악물었다. 잘하지도 못하는 경신법으로 용을 쓰느니, 그냥 가장 잘하는 걸 시도해 보기로 했다. ‘으아아아아!’ 허윤은 머리를 앞으로 하고 전력으로 달려서 벽을 들이받았다. 네가 깨지나, 내가 깨지나 보자! 콰앙! 굉음과 함께 벽에 세로로 구덩이가 크게 생겼다. 하지만 허윤은 벽을 뚫지 못하고 중간에 멈추고 말았다. 벽은 생각보다 두꺼웠다. 쾅! 마라왕 셋은 화들짝 놀랐다. 허윤의 몸에서 뭔가 폭발이 일면서 정수리에서 환한 빛무리가 뭉쳐 있다가 퍼졌다. “헛! 이게 무슨…….” 그들도 바보가 아니다. 방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얼추 알아챘다. “오기조원도 아니고…….” “선법 쪽인가?” 허윤의 뒤집힌 눈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러자마자 바로 욕설을 내뱉었다. “아오, 씨!” 표정을 보고 백룡회원들은 허윤이 실패했다는 걸 깨달았다. 낙락이 아쉬워하면서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보게, 회주. 벽을 못 넘었나? 뭔가 좀 과격한 느낌이 드는데?” “원래는 어떤데요?” “글쎄, 나도 직접 겪어 본 적이 없어 잘 모르겠으나 들은 바로는 아주 조용하고 차분하다더군. 그러면서 온 세상에 첫눈이 오는 것처럼 경건하고 고요한……. 그런데 자네는 확실히 뭔가 좀 이상하군그래.” “벽을 박살 내려다가 실패했습니다.” “……그런 건 처음 듣네만?” 허윤이 주문을 멈춘 마라왕들에게 말했다. “잘 좀 해 보시오. 조금만 더 하면 될 거 같소.” 세 마라왕은 황당했다. 게다가 괘씸했다. “이놈이 우리의 저주를 이용해서 수련을 해?” 허윤이 손을 마구 휘저었다. “아아, 이거 감 깨지기 전에 빨리 좀 합시다!” 세 마라왕이 화를 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놈을 봤나.” 마라왕도 성격이 범상치 않은 자들이었으나 이곳 놈들에 비하면 자기들은 정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윤이 인상을 쓰며 내려다보았다. “자신 없소? 겨우 이런 수준의 저주로 왕이니 뭐니 했던 거요? 댁들이 이기면 풀어 준다고 했잖소. 날 죽이면 살고, 못 죽이면 죽는 거요.” “롤배팅 마라. 네놈에겐 협력하지 않겠다.” “감히 우리를 이용해 먹다니.” “우리가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할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